마음을 비우고 자연 속에서 열심히 놀았을 뿐

항암치료에도 재발된 폐암, 자연치유로 빠르게 호전돼

이곳에서 매일 풍욕과 냉온욕을 하고 등산을 했다. 새잎이 돋아나듯이 하루가 다르게 몸이 가뿐해졌다. 이렇게 느긋하게 자연을 즐기면서 마음까지 즐거워지니, 참 살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_ 김종국(가명, 폐암)

나는 평소 술과 담배를 즐기는 편이었다. 하지만 병원 신세 한 번 진 적 없을 정도로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다.

가리는 음식도 없었다. 흔한 몸살감기도 나랑은 상관이 없었다. 특히 소화나 배변은 정말 원활했다. 가족들도 인정할 정도로 건강한 체질이었다.

 

 

흡연과 폭음으로 찾아온 폐암

 

다만 흡연한 기간이 길었고 폭음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몸이 상하는 경우는 종종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1주일째 감기가 계속됐다. 감기가 지속되면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점점 기운이 떨어졌다.

 

보다 못한 아내가 X-ray 촬영이라도 해보자며 아들 녀석과 함께 진단방사선과의원에 데려갔다. 병원에서는 폐에 염증이 있다며 CT 촬영을 추가로 권유했다.

 

검사가 끝나고 휴게실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그때 담당 의사선생님이 아들만 몰래 진료실로 불러 상담을 했던 것이다.

 

의사는 폐암이 예상된다는 소견을 아내와 아들에게 알려주었다고 한다. 아내와 아들은 나에게 가벼운 염증이라고만 했다. 큰 병원에 가서 다시 진료를 받아보자고 했다.

 

인근 대학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했다. 그 결과 폐암 2~3기라는 판정이 나왔다. 그때도 가족들은 나에게 작은 덩어리가 있어 수술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2006년 3월, 서울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다. 나는 그때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5월까지 항암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경과도 좋고 항암치료 부작용도 적어서 5월 말에 수술을 받기로 했다.

 

 

수술과 항암치료에도 암은 낫지 않아

 

흉부외과 의사들도 놀랄 정도로 성공적인 수술이었다. 암 덩어리가 깨끗하게 제거되었다는 것이었다. 퇴원 후에는 암 재발 예방약을 복용하면서 두세 달에 한 번씩 검사하러 병원에 갔다. 별 다른 관리는 하지 않았다.

 

수술부위에 약간의 통증이 있을 뿐, 일상생활에서도 큰 불편을 느끼지는 않았다. 의사선생님들이 권하는 대로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개고기를 비롯하여 고단백 고지방 음식을 많이 섭취했다.

 

2006년 12월, 정기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 그런데 담당 의사선생님이 정밀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워낙 수술이 잘 됐다는 소견도 있었고, 나 역시 몸에 특별한 이상을 못 느꼈기 때문에 별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밀검사 결과 암이 재발되어 있었다. 이미 대동맥과 림프절로 전이되었다고 했다.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담당 의사의 소견이 나왔다. 그때부터 방사선치료와 화학요법을 동시에 받아야 했다.

 

의사는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그러나 가족들의 만류로 수술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로 했다. 그래서 병원 근처에 방을 얻어 아내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매일 방사선 치료를 받고 1주일에 한 번 항암 주사를 맞았다.

 

1주일 정도 지났을 때 아들과 딸이 찾아왔다. 아이들은 다른 치료법을 찾아보자고 설득했다. 하지만 나는 담당 의사님의 소견과 처방만 믿고 끝까지 치료를 받아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들과 딸의 계속된 설득에도 나는 며칠 더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그때부터 항암치료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입맛이 없어지며 음식 냄새조차 역겨웠다. 하루 종일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

 

점차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왔다. 삶에 대한 희망이 나날이 줄어들면서 이제 마지막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치유 덕분에 새로운 희망 생겨

 

하지만 가족들의 도움으로 자연치유를 알게 되었다. 가족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나는 조병식 원장님 말씀을 듣고 작은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조병식 원장님은 내 병의 원인이 오랜 흡연과 잦은 회식이라고 했다. 섭생과 생활습관을 바꾸고 몸에 쌓인 노폐물, 독소를 빼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면역을 증강시키면 암을 억제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하셨다.

 

자연치유 프로그램을 살펴보니 자연식과 등산, 쑥뜸, 명상 등이 있었다. 이런 것들은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프로그램과 조 원장님 모두 믿음이 갔고 안심이 되기 시작했다.

 

입소를 결정한 후 비로소 이곳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나뭇가지는 아직 앙상하지만 봄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곳까지 찾아오게 된 것도 깊은 인연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새로운 희망을 안고 이곳에 입원하였다. 함께 생활하게 된 환우들도 다 같은 처지라 그런지 금방 친해졌다. 같은 방을 쓰게 된 분은 현직 교장 선생님이었다. 그분은 나보다 오래 투병을 해왔고 나보다 더 위중한 상태였다. 하지만 치유하겠다는 의지가 대단하였다.

 

우리는 프로그램에 따라 아주 열심히 생활했다. 말 잘 듣는 모범학생이었던 것이다. 매일 풍욕과 냉온욕을 하고 등산을 했다. 새잎이 파릇파릇 돋아나듯이 하루가 다르게 몸이 가뿐해졌다. 점차 다리에 힘도 생겼다.

 

이렇게 느긋하게 자연을 즐기면서 마음까지 즐거워지니, 참 살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기수련이나 명상도 좋았다. 기수련은 따라 하기는 힘들었지만 깊은 호흡을 하고 명상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조 원장님은 ‘폐과는 성격이 급하고 욕심이 많은 편이다. 욕심을 버리시라’고 하였다. 자존심 강해서 처음에는 그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사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여기서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논과 밭을 부동산에 내어놓았는데 거기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다시 마음을 좀 더 느긋하게 가지리라 다짐하였다. 4월이 되자 봄이 완연해졌다. 원동이 참 예뻤다. 매화와 진달래가 산을 물들이고 바람에 실려 온 매화 향은 정말 일품이었다. 한 달 더 지내면서 열심히 산을 타고, 매일 열심히 108배를 하였다.

 

3개월째 되는 날, 서울대병원에서 PET 검사를 받았다. 그 결과 대동맥 림프절에 있던 암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암세포가 다 사라진 것처럼 기뻤다.

 

나는 당당히 ‘하산’하였다. 이곳에서는 퇴원을 하산이라고 부른다. 서울대학교병원 주치의 선생님은 내게 무슨 치료를 받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렇게 호전된 나를 보고 놀라셨을 것이다.

 

나는 원장님 말씀대로 마음을 비우고 자연 속에서 열심히 놀았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온 지금도 마음을 비우고 산을 열심히 타고 있다.

 

마침 원장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잘 지내시죠?”

“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런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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